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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6/08  관리계정   [ 조회: 1672 ]
007 영화 한 장면 처럼…바다를 가른다

007 영화 한 장면 처럼…바다를 가른다
[영화로 확 뜬 ‘7급 공무원’ 이야기] ② 공기부양정 정장 박형규 씨

인천 해양경찰서 경비함정 전용부두.

3000톤급 함정과 크고 작은 바지선들 사이로 납작한 비행물체 같은 것이 한 척 떠있다. ‘007 시리즈’ 영화에서나 한번쯤 봤을 법 한 이 정체 모를 선박은 이내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기부양정이 부두를 막 출발하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청이 지난 2002년 2월 영국 ‘그리픈 호버크래프트사’로부터 도입한 공기부양정.
  
지면이나 수면 위에 살짝 떠서 움직이는 이 선박의 정체는 바로 ‘공기부양정’이다. ‘호버 크래프트’라 불리기도 하는 이 특수한 배는 땅 또는 물 위를 낮게 떠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다.

인천국제공항 연안의 경우 조수간만의 차가 커, 썰물 때는 육지로부터 8㎞나 떨어진 곳까지 갯벌이 드러나 소형 경비정조차 운항이 불가능하기에 이 같은 특수선박을 도입한 것.

실제로 북한을 배경으로 한 007 시리즈 영화 ‘어나더데이’에는 땅 위를 고속으로 달리는 크고 작은 공기부양정이 여러 척 등장하는데 해상 경비 치안과 구조 활동을 주로 하는 해양경찰에게는 필수 장비다.

불법 선박, 집까지 찾아가서 잡아올 수 있어요

이 공기부양정의 정장을 맡고 있는 박형규 경위(49, 7급 공무원에 해당). ‘호버 크래프트’가 한국 서해바다를 누비기 시작한 지난 5년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동고동락해 왔다.  

인천해경 공기부양정 정장 박형규 씨.(사진=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인천해경 공기부양정 정장 박형규 씨.<사진=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인천에만 경비정이 30척은 되는데, (공기부양정을) 거의 못 따라와요. 아래쪽 공기주머니에 공기를 불어넣으면 압력이 생겨 물 위에 뜨게 되죠. 이 정도면 거의 날아가는  거에요. 비행기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마치 비행기 조정석과 흡사한 ‘조정간’을 앞에 두고 능수능란한 운전 솜씨를 뽐내던 박 씨는 ‘시속 60km라는 속도가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킨다. 그의 손가락을 쫓아 오른쪽 창문 밖을 보자, 거세게 이는 물보라가 빠른 속도를 짐작케 해줬다.  

비행기 조정석과 흡사한 공기부양정 운전석 내부 (사진=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비행기 조정석과 흡사한 공기부양정 운전석 내부.<사진=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중국선박이 불법 어업을 하고 도망가잖아요. 그러면 일반 경비정은 쫓아갈 수 없는데, 저희는 집까지 쫓아가서 잡아올 수 있어요.(웃음) 그래서 연안의 선박들이 저희를 제일 무서워해요.”

공기부양정은 최대 속력이 45노트(시속 80km)에 달해 기동성 측면에서 뛰어난 데다, 무게 27t, 길이 21.2m, 폭 11.3m, 높이 7.5m로 민첩성을 요구하는 해상 경비 활동을 펴기에도 적당한 규모다.

아찔했던 조난사고, 5분간의 구출 작전

또 일반 선박이 접근할 수 없는 갯벌 위도 질주할 수 있어 육지, 바다, 강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 해경은 지난 2005년 5월 7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경기도 화성 입파도 사건 이후 ‘122’ 해양긴급번호를 도입하고, 군사전용이던 공기부양정을 민간인 구조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3년 전 무위도에서 아찔한 사고가 한 번 있었죠. 놀러왔던 한 모자가 조개를 잡으러 갯벌로 나갔다가 물이 차 들어오는 바람에 절벽에 갇힌 거에요. 물이 완전히 차오르면 10분 이내에 잠길 수 있는 아주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절벽이라서 배나 헬기도 못 들어가는 상황이었지요. 그 때 저희가 출동해 단 5분 만에 구출 해냈습니다.”

울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자를 보면서 ‘이게 진짜 보람’이라고 느꼈다는 박 씨는 지금까지 도서지역 응급환자를 비롯해 갯벌에 고립되거나 익사 위험에 빠진 약 600명의 목숨을 구해냈다고 한다. 이런 공기부양정의 효용성 덕분에 해경은 지난 2005년 12월 2호정을 추가로 도입했다.

박 씨가 공기부양정을 몰기 시작한 것은 2호정 도입과 함께였으니 현재까지 정장만 5년째 해오고 있는 셈이다. 해양대학교를 나와서 파출소, 함정, 외양선 근무 등을 거쳐 공기부양정 정장까지. 올해로 공무원 생활 20년째를 맞는다는 그는 “다른 데서 15년 근무한 것보다 여기서 5년 근무한 게 더 많이 기억에 남고, 더 큰 보람을 주었다”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필요할 땐 가장 먼저 출동…이 직업만의 매력

다만, 2호정 등장으로 근무체제가 격일제에서 상시 활동으로 바뀌면서 다소 힘들어졌다고. 현재 공기부양정 2척이 24시간씩 격일로 근무하고 있다. “군대로 보면 ‘5분 대기조’나 마찬가지”라며 박 씨는 살짝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6월 1일~2일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맞춰 1호정이 제주도 대테러 활동에 투입되면서 요 며칠 사이에는 그나마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고. 더욱이 절벽, 암초와 같은 위험한 조건과 늘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내에서 두 척밖에 없다는 희소가치 때문에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매력 덕분에 요새 신참 공무원들 사이에서 인기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필요할 때 가장 먼저 가서 도와드릴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게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요.”

‘5분 대기조’ 근무 때문에 집에선 인기 없는 아빠가 되었다는 그는 “그래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드리는 것도 제 몫이니 열심히 하면 아이들도 이해해 줄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그러는 사이 공기부양정은 어느새 갯벌 위를 달려 종착지인 실미도로 접어들고 있었다.